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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위폐를 모신 육신사

by 청산. 2014. 5. 21.

 

 

육신사는 심촌에게 왕권을 빼앗긴 어린 왕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 숨진
사육신으로 일컫는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성삼문,이개,유성원,하지위,유응부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취금헌 박팽년(醉琴軒 朴彭年) 선생만을 그 후손들이 모셔 제사를 지냈으나
선생의 현손(玄孫)인 박계창이 선생의 기일에 여섯 어른이 사당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나머지 5위의 향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 뒤 하빈사(河濱祠)를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숙종 20년(1694년) 낙빈(洛濱)이란 현액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3년(1866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페령으로 낙빈사가 서원(書院)과 함께 철거되었으며,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면서 위패를 다시 봉안하게 되었다. 이후 1974년부터 1975년 사이에
충효위인 유적정화사업에 의해 현재의 위치에 육신사로 이름을 붙여 사당을 재건하였고,
2003년부터 2011년에 걸쳐 충절문을 세우고 전통가옥을 복원하였다.

 

사우건물인 숭정사에는 육신과 더불어 박팽년의 부친인 중림(仲林, ?~1456년)의 위패도 함께 봉안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경내에는 이외에도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인 숭절당,태고정(보물 제554호),외삼문,내삼문,
홍살문,삼층각 등이 있고 사당 앞에는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각비(1979년 건립)가 세워져 있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