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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원..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를 만날 수 있는 곳 강릉 오죽헌

by 청산. 2013. 2. 6.

 

 

조선시대 훌륭한 학자인 율곡 이이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태어난
강릉의 오죽헌을 10년 만에 다녀 왔습니다.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둘러보니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별로 없었으나
그 느낌은 참 많이도 달랐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찾아간
오죽헌의 느낌이 달라 질만도 하지요.

 

검은 대나무가 집의 뒷 뜰에 많이 자라고 있어
까마귀 오와 대나무 죽을 써
오죽헌 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율곡 이이가 태어 난 몽룡실도 볼 수 있고
율곡 기념관 과 향토 민속관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문성사는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8월 인조대왕이 율곡 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道德博聞 安民立政)'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율곡 선생이 쓴 <<격몽요결>>과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건축된 어제각이 있었으나
사랑채 북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문성사를 건립하여 율곡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
[자료출처:오죽헌 시립박물관 홈]

 

 

 

 

오죽헌은 1536년(중종31년)율곡 이이선생이 탄생한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별당 사랑채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건축물이다.
세종조(世宗朝)당시 공조참판과 예문관 제학의 벼슬에 오른
강릉 12향현 중의 한 분인 최치운에 의해 건립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별당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처음 오죽헌이 지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600여년 전이다.
[자료출처:강릉문화관광]

 

 

 

 

 

 

 

 

 

 

 

 

 

 

 

 

 

 

 

 

 

 

 

 

 

 

 

 

율곡 이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과 학자로 호조,이조,병조 판서,우찬성을 지냈으며
서경덕의 학설을 이어받아 주기론을 발전시켜 이황의 주리적 이기설과 대립하였고
저서로는 율곡전서,성학집요,경연일기를 비롯한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합니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를 상징하는 인물로
시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자 율곡 이이를 낳은 훌륭한 어머니로
48세를 일기로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많은 작품을 남긴 여류 예술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