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울.경 기.인천..

신미양요의 격전지 강화 광성보

by 청산. 2011. 11. 23.

신미양요의 격전지 강화 광성보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강화 광성보를 둘러보기 위하여 찾아가니
사방이 안개에 휩쌓여 가시거리가 영 좋지 않습니다.

 

 광성보는 원래 강화외성으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바다길을 따라 쌓은 성이라 합니다.
이를 광해군 때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으며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 쌓아 용두돈, 오두돈, 화도돈, 광성돈 등이 만들어 졌으며
영조 21년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고 이를 안해루라 명 하였다 합니다.

 

 

광성돈대 안의 3개의 포는 홍이포,소포,불랑기란 화포이며
홍이포는 포구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한 다음
포 뒤쪽 구멍에 점화해 사격하는 사정거리 700m의 화포이나
포탄을 날아가 폭발하지 않고 배만 부수는 역활만 하였다 합니다.

 

광성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의 돈대 중 하나이며
1679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여 일만에 완공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다가 1977년에 포좌 4개소와 포 3문을 복원 하였다 합니다.

 

안개에 휩쌓인 안해루...

안해루를 통과하면 해안이 보이나 짙은 안개로 인하여 보이지 않습니다.  

 

 

 

 

 

광성보는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산책을 즐기기 위해서도 아주 좋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와 쌍충비각...

광성보는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용감히 항전하였으나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되기를 거부하여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합니다.

 

 

 

안개에 휩쌓인 산책로가 가을의 색다른 분위기를 그려주고 있습니다.

 

 

 

 

 

짙은 안개로 인하여 역사의 현장을 세세히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컷으나

외세침략에 맞서 나라를 위하여 순국하신 그들의 넋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이 머리속에 가득 채워 집니다.